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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연금 지 12월 호 / 여보! 비가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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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한 작성일17-12-12 16:23 조회2,1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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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연금 지 12월호]

 

 

               여보! 가 와요

 

                                                   김성한 님 경기 양평군 용문면 예술인마을길 

 

   

   사금내산 초입에 들어서니 다행히 비는 그쳤습니다.

   조붓한 산길이 생각보다 가파릅니다. 숨이 턱턱 막힙니다. 산등성이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아내

가 싸준 김밥 한 줄과 뜨거운 커피 한 잔으로 어설프게 먹은 아침 식사를 보충합니다.

   바위 너머로 봉긋하게 솟은 쌍분(雙墳)이 보입니다. 그 흔한 비석조차 없는 묘지이지만 잡풀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습니다.

 

   몇 해 전, 일가붙이 네댓이 선영(先塋)에 벌초하러 갔습니다. 벌초 때마다 매번 그러하듯이 동생

은 예초기를 돌리는 정식 이발사이고, 나는 잘라낸 잡초를 갈퀴나 낫으로 걷어내는 보조 이발사입

니다.

   어설픈 일꾼이라 그런지 그날 조그만 사고가 났습니다. 가운뎃손가락에 가시가 박혔습니다.

옛날 쇠꼴 베던 시절, 이 정도 상처는 다반사였습니다. 약국에서 사온 연고만 바르고 그냥 내버

뒀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낫지 않았습니다. 손가락이 퉁퉁 붓고 쓰렸습니다. 동네 병원에

 가보니 종합병원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겁이 덜컥 났습니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대학병원에 가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가시에 손가락 찔린 것뿐인데 무슨 수술까지. 시무룩한 표정의 나

에게 그냥 놔두면 손가락을 잘라야 할지도 모른다며 알아서 하라는 투였습니다.


   하루아침에 환자가 되어 난생처음 입원했습니다. 환자복 차림에 온종일 병원 침대에서 뒹구는

나날이었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한다고 투덜대며 출근하던 우체국 일상이 그리웠습니다. 아침이면 장꾼들로

 북적대는 장터 같은 우편실이 눈에 어른거렸습니다. 해맑은 여직원들의 얼굴도,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오토바이를 타고 우체국 정문을 나서는 구릿빛 집배원의 얼굴도 보고 싶었습니다. ‘범사에 감

사하라는 성경 구절도 생각났습니다.

 

   지난밤에는 신달자 작가의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는 산문집을 읽었습니다. 뇌졸

증으로 쓰러진 남편을 무려 24년간이나 수발하며 깨달은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사랑하는 제자

희수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써 내려간 얘기입니다.

   책 본문 중 여보! 비가 와요.’라는 대목에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몰랐던

 비가 와요’, ‘국이 싱거워요.’ 등 일차적인 가벼운 말들이 무척이나 그립다는 내용입니다. 소소한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책입니다.

 

   끄무레하던 날씨가 비를 뿌리기 시작합니다. 배낭을 챙겨 메고 막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휴대

전화 벨이 웁니다.

   “여보, 비가 와요. 조심해서 내려오세요.” 아내의 전화입니다.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그래 맞아. 번지르르한 말보다 가벼운 말 한마디가 몸도 마음도 가볍게

 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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