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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전기밥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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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상진 작성일23-04-01 14:35 조회2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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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전기밥통

침 6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잠자리에서 일어나 이부자리를 개고 있는데 집사람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 일찍 무슨 일로 부르는 거야?”주방으로 갔더니 그동안 사용했던 전기밥솥이 고장 나는 바람에 어제 새로 사온 밥솥으로

 

아침밥을 지으려는데 작동이 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용설명서를 읽어보고 잠금 장치를 옆으로 돌리자

빨간색 전원 불빛이 켜져 “이제는 제대로 밥이 잘 될 거야!”하고 천천히 세수를 하고 아침 일찍 배달된 신문을 대충 읽어보고

 

식사를 하러 주방으로 들어갔는데 집사람이 조그만 냄비를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밥을 하고 있었다.

“아니!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출근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작동이 안 되는 건가?”물었더니 이상하게 안 되어서 냄비에 짓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하고 전기밥솥을 바라보다 “참!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어 취사버튼을 누르자 그때서야

“밥을 시작한다.”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아까 전기밥솥의 잠금 장치를 돌리고 취사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그걸 깜박 잊고 그대로 놓아두는 바람에 전원 불만 켜졌을 뿐 밥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할 수없이 냄비에 지은 밥을 먹으면서

“아이고! 멍청한데 는 약이 없어! 취사버튼도 누르지 않고 밥만 안 된다고 했으니!”하며 빙그레 웃는 집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그만“허! 허! 허!”웃고 말았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아주 오래전 추억이 가만히 고개를 들고

꿈틀거리며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우리 모두가 힘들게 살았던 1970년대 말. 시장에서 보따리 행상을 하셨던 어머니는

 

아침 일찍 시장에 나가셔야 했지만 자식들의 아침 밥 때문에 늘 다른 사람보다 늦게 나가셔야만 했었다.

그래서 짜낸 묘안이 바로 전기밥통이었다. ‘전기밥통에 쌀을 안쳐놓고 보단만 눌러노문 밥이 저절로 되야갖고,

 

한종일 놔둬도 식도 안하고 따땃하게 묵을 수 있다 그랑께, 그것을 꼭 한나 사야 쓰것다!’그러나 그 당시 새내기 공무원이었던

내 월급은 한 달에 고작 7만원 정도였는데 전기밥통의 가격은 월급의 절반쯤 되는 3~4만 원 정도였기 때문에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어서‘이걸 어떻게 사야할까? 월부로 사야할까? 그런데 월부로 사려면 누가 보증도 서야 한다던데! 그러면

누가 우리 보증을 서 준단 말인가?’하며 벼라별 연구를 다 하셨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을 하여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께서 그렇게도 바라고 또 바라던 전기밥통이 아랫목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이렇게 비싼 전기밥통이 왜 우리 집 아랫목에 버티고 있지?“ 하고 어머니께 물었더니 “그것을 살라고 그란 것이 아니고

 

여차로 밥통 파는 집에 가서 그것 살라문 우추고 해야 되요?”물었더니 사장님께서 “아짐! 지금 돈 읍으문 한 달에 3천원도 괜찬코,

5천원도 괜찬항께, 조카가 월급 타문 째깐씩 갚으씨요! 하드니 그 자리에서 차에 실어 집이다 갖다 주드란 마다!”하시는

 

어머니의 눈가에는 가느다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연탄불이나 장작불로 밥을 지었던 그 시절, 버튼만 누르면 밥에 되고

하루 종일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전기밥통은 지금까지의 주방 역사를 새로 쓰는 아주 귀중한 전자제품이었으니

 

어머니의 기쁨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흑백 TV는 물론 각 가정에 전화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힘들기만 했던

그 시절이 그래도 가끔 그립고 생각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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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는 기차일까요? (지난 2023년 3월 28일 전남 보성군 득량역에서 촬영한 기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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