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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있을랑가 몰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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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상진 작성일23-01-14 13:44 조회2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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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있을랑가 몰것네!”

 

어젯밤 아무도 모르게 찾아온 차가운 날씨가 밤새 건너편 집 양철지붕위에 하얀 그림을 그리며 마음껏 뛰어놀다 밝은 해가 떠오르자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는지 지붕이 축축하게 젖은 채 빗물이 흐르는 홈통에 맑은 물이 한 방울씩‘똑! 똑!’떨어지고 있었다.

 

볼일이 있어 마을 공동 우물가를 지나가는데 마을 형수님 세분께서 배추를 씻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수고가 많으시네요.

오늘은 누구 배추를 씻고 계세요?”묻자“우리 배추여!”하고 형수님 한분이 대답하신다. “그러면 내일은 김치를 버무리시겠네요.”

 

“그라제! 그란디 삼촌은 짐장했으까?” “저의 집은 엊그제 끝냈어요?” “그랬어! 우메 잘했네! 그란디 양념은 누구랑 비볐어?”

“저하고 저의 집사람하고 둘이서 했어요.” “그랬어! 그라문 장모님이랑 부르제 그랬어?” “작년까지는 오시라고 했는데

 

금년에는 연세도 많으신 데다 날씨도 춥고 그래서 오시라고 안 했어요.” “그라문 장모님이 오시문 같이 김치도 담고 그란가?”

“나이가 90살이 넘으신 분이 그런 일을 하시겠어요? 그냥 옆에서 구경이나 하고 계시지요. 그런데 금년에는 하필 감기까지 걸려

 

오시라고 하기 조금 그렇더라고요.” “그라문 올해는 짐장을 을마나 했어?” “금년에는 30포기 정도 했거든요.”

“그라문 작년에는 을마나 했는디?” “작년에 50포기요.” “그라문 올해 너머 작게한 것 아니여?” “그게 재작년에 70포기를 했는데

 

작년 김장할 때 까지도 김치가 남아있더라고요. 그래서 작년에 50포기를 하면 애들이 가져다 먹고 하면 부족할 것 같았는데

아들들이 우리 집 뿐만 아니고 처갓집에서 가져다먹고 그러니까 별로 안 가져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집사람이

 

‘금년에는 30포기만 해도 남을 것 같다!’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또‘내년 설날이 1월 말경에 들어있어 봄이 빨리 올 것 같으니까

김치는 조그만 담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형수님은 금년에 김장을 몇 포기나 하세요?” “나는 많이 해!”

“얼마나 하시는데요?” “나는 70포기나 되야!” “아니 형수님은 두 식구 살면서 김장은 그렇게 많이 하세요?”

 

“우리는 일곱 집이 나눠 묵어야 쓴께 아무리 작게 해도 70폭은 해야 되야!” “왜 일곱 집인데요?” “우리하고 아들 둘이 그라고

딸 한나 또 조카들 둘이 그라고 시아제까지 일곱이여! 그랑께 한집이 10폭씩 계산하면 일곱 집 그랑께 70폭은 해야제!”

 

“그러면 배추는 시장에서 사다 하시는 거 에요?” “우리 사돈 집이서 사갖고 왔어! 그란디 으째 배추가 겉보기는 한나 썩은 디도 읍시

참말로 조은디 가운데를 쪼개 보문 속에가 썩은 것이 있드랑께 그래서 그런 것은 파내불고 소금에 절였는디 맛이 있을랑가 몰것네!

 

그란디 삼촌집이는 배추를 사갖고 왔는가?” “아니요! 저는 텃밭에 심었는데 작년에 비하면 잘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행스럽게 썩은 것은 몇 폭되지 않아 저의 김장은 충분히 하고도 남겠더라고요. 그런데 왜 형수님은 밭에 안 심으셨어요?”

 

“재작년까지는 밭에다 심어갖고 했는디 작년에 으째 배추가 잘되다가 이상하게 겉잎이 모르기 시작하드니 속까지 차근차근 썩어 들어가! 그래서 작년에도 포기를 하고 사다가 했는디 올해 또 이상하게 작년하고 똑 같이

그라고 썩어 불드랑께! 그란디 으차껏이여? 배추가 읍으문 사다라도 해야제! 그란디 다행히 우리 사돈집이 배추가 있어서 실어왔는디

 

올해 짐치 맛이 으찰랑가 몰것네! 그래도 아무리 내가 짐장을 맛있게 잘할라고 벼라별 양념을 다 써서 한다고 해도

배추가 좋아야 맛이 지대로 어우러지는 것인디 으짤랑가 벌써부터 꺽정이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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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하얀머리를 곱게 빗어 넘기고 오가는 길손에게 수줍은 미소를 보내던 억새아가씨가 어느새 호호백발 할머니로 변해 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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