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 산소의 벌초

푸른 하늘에 흰 구름 한 조각 어디론가 두둥실 떠가는데 시골마을 입구의 정자나무 꼭대기를 점령한 매미 한 마리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까부터 계속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만, 마을을 이어주는 한적한 시골길에는 빨강 하얀 코스모스가

예쁘게 피어 수줍은 듯 바람에 한들거리며 어느새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관주산에서 운동을 마치고 천천히

산을 내려와 마을 쪽으로 돌아섰는데‘위~위~윙!’풀 베는 기계소리가 들려왔지만 별 생각 없이 지나가는데“형님!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계셨어요?”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잘 아는 후배가 예초기를 등에 매고 빙그레 웃고 있었다. “자네 정말 오랜만일세!

그런데 여기는 누구 산소인데 벌초를 하고 있는가?” “저의 할아버지 산소인데 작년까지는 저의 형님과 같이 벌초를 했는데 금년에는

사정이 생겨 저 혼자 하고 있네요.” “무슨 사정이 있었는데?” “저의 형님이 급성 간암(肝癌)으로 갑자기 돌아가셨거든요.”

“그랬어? 그러면 그동안 건강검진 같은 건 안 받아보셨을까?” “받아보긴 하신 것 같은데 워낙 갑자기 그런 일이 생기니

정말 황당하더라고요.” “사람이 살다 그런 일이 없어야하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네! 그런데 자네 할아버지 산소의 봉이 세 개던데

왜 그럴까?” “저의 할아버지 첫 번째 부인에게는 후손(後孫)이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두 번째 부인을 맞이하셨는데

그 부인에게서 난 자손이 저의 아버지시니 저의 친 할머니가 되겠지요? 그래서 봉이 세 개인데 보기 싫은가요?” “보기 싫은 것은 아닌데

이런 경우는 대부분 조부님과 첫 번째 부인을 한 봉에 모시고 그 옆에 두 번째 부인을 모시면 봉 두 개로 세분을 자연스럽게

모실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면 좋은데 저의 조부님과 조모님 돌아가셨을 때는 제가 어릴 때였기 때문에 그런 것을 생각이나

했겠어요?” “그러니까 혹시 다음에 산소를 이장(移葬)하면 참고하라는 이야기야!” “그런데 형님은 산소에 벌초는 하셨나요?”

“나는 재작년까지는 큰집 형님과 작은 집 동생이랑 직접 벌초를 했는데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한번 하고 나면 정말 힘이 들더라고

그래서 작년부터 남에게 맡겨서 하고 있네.” “그러면 마음에 들게 깨끗하게 잘하던가요?” “우리 집안 조카뻘 되는

사람에게 맡겨서 하는데 대체적으로 깨끗하게 잘하는 것 같더라고.” “그러면 정말 다행이네요. 그런데 지금 조상님 산소의 벌초도

우리 세대에서나 신경을 쓰고 있지 우리 아들이나 조카들은 아무 관심도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걱정일세! 우리 세대는 어떻게 하든

벌초는 꼭 하는데 우리 후손들은 그런 일에 전혀 관심이 없으니 앞으로 조상님들 산소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나 하는지

그저 답답할 때가 있더라고.” “그러니까요. 그런데 누구 말을 들으면 ‘조상님 산소에 벌초하기 싫다!’며 묘를 파헤쳐 유골을 꺼낸 다음

도치램프로 태워서 아무 곳에나 마구 뿌려버리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리 산소에 벌초하기가 싫어도 그런 짓을 하면 되겠는가?

차라리 벌초를 하지 말고 그대로 놔두고 몇 년 지나면 풀이 자라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산소도 없어지지 않겠는가?”

“형님 말씀을 들어보면 정말 그 말씀이 맞는 이야기네요. 그런데 그렇게 몇 년 지나고 나면 산소의 봉은 없어지겠지만

묘 앞에 세워놓은 비석은 그대로 남아있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것이 골치 거리가 아닌가 싶거든. 어떤 사람들은 조상님보다

자신의 부를 과시하려고 석물(石物)로 치장하는데 과연 그것들이 돌아가신 분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생각해 보았는지는 모르겠더라고.”

태백산 문수봉 주변의 가을입니다. (2022년 10월 19일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