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 만큼만 묵어야제 우추고 하꺼인가?”

낮에는 숨이 막힐 듯 뜨거운 무더위, 밤이면 잠을 이루기 힘들 정도의 열대야(熱帶夜)가 계속되던 8월이 때가 되자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나버리자, 푸른 하늘에 흰 구름 한 조각 어디론가 천천히 흘러가고 꼬리가 빨간 고추잠자리 몇 마리는

누렇게 변해가는 시골들녘의 벼 위를 천천히 저공비행하며 풍요로운 수확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관주산 정상에서 기구를 이용하여

운동을 하고 있는데 “동생! 끝날라문 안직 멀엇는가?”선배의 말씀에 “저는 운동을 금방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내려갈

시간이 되었나요?” “그것은 또 먼 소리여! 지금 시간이 11시가 다 되야간디 금방 운동을 시작한 것 같다 그란가?”

“그래요? 오늘 따라 이상하게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네요.” “사람이 살다 보문 시간이 빨리 갈 때도 있고 늦게 갈 때도 있는 거이시

그랑께 얼렁 내려가세!” “그러면 오늘 형님의 시간은 빨리 가던가요? 아니면 늦게 가던가요?” “나야 매일 집이서 놀고 있는 백순디

시간이 빨리 가문 멋하고 늦게 가문 멋허꺼인가? 그냥 가문 가는대로 오문 오는 대로 살아야제!” “그런데 왜 그렇게

자꾸 내려가자고 재촉하세요?” “이 사람아! 지금 내려가도 우리 집에 가면 12시가 넘어! 그러면 우리 마누라가 늦게 왔다고

밥을 안 차려주면 어떻게 할 건가? 내가 차려 먹어야 자네 직성이 풀리겠는가?” “하루쯤 점심 한 끼 형님 손으로 직접 차려 잡순다고

누가 잡아가기야 하겠어요? 그래도 곤란하시면 내려가시게요.”하며 일행들과 함께 천천히 산을 내려와 밭(田) 옆길로 들어섰는데

영감님 한 분이 밭에서 베어낸

참깨 대를 손수레에 싣고 계셨다. “어르신! 참깨 대를 집으로 옮기려고 그러세요? 그러면 지금부터가 일이 많네요.”

“세상에 으디 쉬운 일이 있단가 마는 특히 참깨는 더 그래! 인자 이것을 실코 갖고 가문 먼차 이파리부터 다 뜯어내야 되야.”

“이파리가 붙어있으면 아무래도 수확하는데 지장이 많아 그러시는 거지요?” “그것을 안 뜯어내문 이것을 몰리면서

일이 훨씬 만해져서 안 되야! 그라고 그것을 뜯어내고 나문 바닥에 포장을 깔아놓고 길게 펼쳐서 몰려!” “바닥에 포장은

왜 깔아야 하는데요?” “이 사람아! 바닥에 포장을 안 깔문 이것 몰리면서 떨어지는 깨알은 으차꺼인가? 한 알이라도 더 허실이

안 되게 할라문 바닥에 포장을 안 깔아야 쓰것는가?” “어르신 말씀을 들어보니 정말 그러네요. 그런데 금년에 참깨는

얼마나 많이 나온다고 하던가요?” “근디 올해 참깨 농사는 별것이 읍다고 그래쌓데!” “정말 그럴까요? 올해는 장마 때

비도 별로 내리지 않았고 또 바람도 많이 불지 않아 수확이 많을 것 같다고 하던데 그게 아니었을까요?” “그게 밭에 서 있을 때는

우리가 보기에 멀쩡하고 알이 꽉꽉 차 있을 것 같아 보이는데 실은 알곡을 수확해보면 그렇게 많은 양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게 모두 기후 때문에 그런다고 한디 내가 뭣을 알아야 대답을 하제!”하며 영감님께서 곤란한 표정을 짓는데 옆의 선배께서

“그게 기후 탓이란 말이 맞는다고 하더라고!” “왜 기후 탓인데요?” “지난번에 농업기술센터에서 근무했던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니

낮에는 날씨가 이렇게 무더워도 밤이면 시원해야 하는데 요즘 들어 계속 열대야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을 정도니 작물들도

그게 굉장한 스트레스가 된다고 그러더라고, 그러다보니 곡식들이 영글지 못하니 쭉정이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하여튼 농사란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하늘에서 정해주는 것이니 준 만큼만 묵어야제 우추고 하꺼인가?”

지난 2022년 10월 17일 촬영한 금수산의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