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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의 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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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상진 작성일21-10-23 17:29 조회2,2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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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의 빈자리

 

관주산 정상에서 후배 한사람과 천천히 산을 내려오는데 어디선가 풀 베는 기계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려보니 길 아래쪽에 위치한 산소에서

누군가 예초기를 이용하여 벌초를 하고 있었다그래서 수고하십니다.”인사를 건네자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아니 형님여기는 어쩐 일이세요?”하며

 

풀 베는 기계를 내려놓고 반갑게 웃는다. “그러고 보니 동생 자네였는가정말 오랜만일세!” “그러게요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산에 운동하러 왔다가 내려가는 길이네그런데 자네는 지금도 직장에 근무하는가?” “아니요지난 7월부터 6개월간 공로연수 중이거든요.”

 

그러면 연수 기간이 끝나면 자동으로 정년퇴직이 되는 것이네나는 나만 나이를 먹고 사는 줄 알았는데 자네도 벌써 정년퇴직할 나이가 되었으니

세월 정말 빠른 것 같지?” “그러게요엊그제 직장 생활을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정년이라니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그저눈 깜짝할 새라는 거 있지요?

 

마치 그런 거 같아요.” “그러게 말일세그런데 여기는 누구 산소인데 자네 혼자 벌초를 하고 있는가?” “여기는 저로 해서 증조부조모님 산소거든요.”

그런데 작년에는 다른 사람이 벌초를 하였던 것 같던데.” “작년까지만 해도 저의 형님께서 벌초를 하셨는데 지난번에 갑자기 쓰러지더니 돌아가셨어요.”

 

그랬어자네 형님 나이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던데 왜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셨을까?” “병원에서는 뇌출혈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랬어정말 안타까운 일이네그런데 자네 혼자 이렇게 벌초를 하려면 산소도 상당히 넓어 힘이 많이 들 텐데!” “그러니까요지금까지 저는 직장 생활하느라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저의 형님 혼자 하셨기 때문에 산소에 가면 그냥 억센 풀은 조금 낫질하고톱으로 주위에 나무 좀 자르고,

예초기로 대충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벌초가 끝나는 줄 알았거든요그래서 지금까지 형님에게 수고하셨다!’는 말 한마디도 안했는데

 

오늘 처음으로 예초기로 풀을 베어보니 정말 장난이 아니네요그리고 돌아가신 형님의 그늘이 이렇게 큰 줄은 정말 몰랐어요.”하는

후배의 눈가에 촉촉이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내 곁에 있을 때는 모르지만 그 사람이 떠나고 없을 때야 비로소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이야기를 나누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후배가 남들은 벌초하면 쉽게 생각하지만 실제 해보면 정말 힘 드는 게

그 작업이더라고요.” “그럼 자네도 해 보았는가?” “저도 조상님이 계시는데 왜 안 하겠어요처음에는 벌초를 하면서 낫을 사용했는데,

 

낫질은 저의 숙부님과 큰댁 작은 형이 하시고 저는 산소 주위의 옻나무 같은 나무를 자르고 또 베어놓은 풀을 한쪽으로 치우는 일을 담당했는데,

그러다 나중에 예초기가 나오면서 그걸 구입하여 사용하는데 작업 시간은 빨라져서 좋은데 벌초가 끝나고 나면 어깨가 내려앉을 지경으로 힘이 들더라고요.”

 

그랬으면 정말 고생이 많았겠는데.” “그래서 나중에는사람을 사서 하자!’고 의견을 모아 재작년까지 남에게 맡겼는데 작년에는

큰집 작은 형이 무슨 맘을 먹었는지 금년에는 우리가 벌초를 하면 어떻겠냐?’해서너무 힘이 들어 못한다!’했더니 먼저 억새 같은 풀만 죽는

 

제초제를 뿌리고 풀이 완전히 사그라지면 예초기로 잘라내면 쉬울 것 같다고 했는데 제초제를 뿌린 다음 아무리 기다려도 풀이 사그라지지 않아

돈은 돈대로 들고 고생은 고생대로 했다고 그러더라고요하여튼 산소의 벌초는 정말 힘든 일이니 누가 하던 간에 그에 대한 고마움을 알아야 하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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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도 들녘에는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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