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회

정우회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문인 광장

매줏덩어리 그 친구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성한 작성일17-07-13 20:33 조회1,889회 댓글0건

본문

 

[조선일보 ESSAY]

메줏덩어리 그 친구


                                                                     김성한(전 영주우체국장)


날된장 냄새 지독하던 남식이… 초등학교 겨우 졸업,
도회지 떠나 수십 년 흐른 뒤 길에서 마주쳐

꽁꽁 언 손으로 철가방 나르다가
자기 식당 일궈내고 자식농사까지… 한겨울 새하얀 메주꽃을 닮았네


2012040402815_0.jpg
숨어버린 하얀 기억을 더듬는 일은 즐겁다. 아득한 유년 시절이나 청소년 시절의 때 묻지 않은 추억은 더욱 그렇다. 친구들과 학교 앞 골목 중국집에서 먹어본 자장면 맛도 잊을 수가 없다.

두어 달 전이었다. 길을 가다 우연히 초등학교 짝꿍이던 남식이를 만났다. '○○○성'이라고 중국의 성벽 이름을 딴 중국 음식점 앞에서 부딪쳤다. 처음에는 서로 얼굴을 몰라봤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그냥 누굴 닮은 사람인가' 하며 지나쳤다. 한참을 가다 돌아보니 그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서야 퍼뜩 생각이 났다. 어릴 때 한마을에 살던 남식이였다.

"어이! 메줏덩어리." "야, 짱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름보다 별명이 툭 튀어나왔다. 남식이는 고향에서 같이 자란 불알친구다. '메줏덩어리'라는 별명답게 그의 얼굴은 네모지고 울퉁불퉁하게 생겼다. 그가 싸오는 도시락 반찬은 언제나 날된장에다 달랑 무김치 하나뿐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검정 책보에는 늘 된장 자국이 묻어 있었다. 냄새도 지독했다.

돌림병이 돌던 어느 해 여름, 그의 아버지는 약 한 첩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그의 나이 일곱 살 때였다. 어머니마저 재 너머 돈 많은 홀아비에게 재가(再嫁)하는 바람에 그는 큰아버지 댁에 얹혀살게 됐다. 큰아버지 댁도 애옥살이 시골살림인지라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다. 형편이 그러하니 상급학교 진학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그는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도회지로 나갔다. 나 또한 그 무렵 고향을 떠나왔다. 그 이후로 소식조차 모르던 친구를 몇십년 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남식이는 자기 가게라며 식당 안으로 들어가잔다. 붉은 벽돌에 담쟁이넝쿨로 뒤덮여 있는 건물 외벽과는 달리 식당 내부는 정갈하게 꾸며 놓았다. 띵똥! 이곳저곳에서 주인을 부르는 버저 소리가 들리고, 주방에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웃음소리, 콧물 훌쩍이는 소리, 자장면 먹는 소리로 널따란 식당이 시끌벅적하다. 그냥 앉아 있기가 뭣해서 일어서는 나를 주저앉히더니 조금만 기다리란다. 한 시간쯤 지나고 나니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이윽고 환한 얼굴로 다가오는 남식이, 참 오랜만에 본다. 햇수로는 근 반세기가 가까워져 온다.

"여보, 내가 가끔 얘기하는 고향 친구가 왔어요." 카운터에 앉아 있는 그의 아내를 불러 인사까지 시킨다. 그는 고향마을을 떠나온 그 해, 먼 친척뻘 아저씨가 운영하는 중국집 배달부로 취직했단다. 지금처럼 오토바이가 없던 시절이라 가까운 길은 뚜벅뚜벅 걸어서 배달하고, 먼 길은 자전거로 그 무거운 철가방을 날랐단다. 한겨울 칼바람 부는 날이면 손발이 얼어 동상에 걸린 적도 있었다며 신고 있는 양말을 벗어 보여준다. 푸르뎅뎅한 동상 자국이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다.

2012040402815_1.jpg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그러면서도 음식 조리 기술을 배우려고 주방에 잔뜩 눈독을 들인 모양이었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만지는 일 하나는 남 못지않게 잘하던 남식이지만, 쉽게 주방에 들어갈 순 없었단다. 주방장 아저씨의 매서운 눈초리가 문고리를 틀어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의 악바리 근성이 나타난 모양이다. 주방장의 감시 눈초리를 피해 들며 날며 눈동냥으로 실습을 해 보다가 한밤중에 불을 낼 뻔했고, 그 때문에 주인아저씨께 된통 야단을 맞고 쫓겨날 뻔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조리 기술을 익히고 배워 지금의 중국집으로 거듭났단다.

"짱구, 한 잔 들어라."

웃으며 얘기하는 그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다. 콧등이 시큰해 왔다. 자식들의 소식이 궁금해서 물으니 갑자기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들과 딸, 남매를 두었단다. 아들은 유명 대학을 나와 국내 굴지의 회사에 다니고 있고, 딸은 사범대학을 나와서 중학교 선생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못난 애비가 미안하지 뭐…"라고 덧붙였다. 문득 지난 설날에 본 '아버지가 미안하다'라는 TV 드라마가 떠올랐다. 젊었을 때는 중국집 철가방맨으로, 거리 청소부로 고생했고, 노년에는 퀵 서비스 일을 하고 있는 50·60세대들의 애환을 그린 내용이었다.

음식점 건너편 한옥 추녀 밑에는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짚으로 만든 새끼에 목을 매단 채 메주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새하얀 메주꽃은 깊은 장맛을 내준다. 장맛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싱싱한 채소와 맛있는 고기를 넣은들 제 맛이 나지 않는다. 세상에서 이처럼 신비롭고 고마운 꽃이 있을까? 문득 한겨울 매서운 칼바람도 꿋꿋이 견뎌내고 새하얗게 핀 메주꽃이, 메줏덩어리 친구인 남식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겨울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도 철가방을 들고 뛰어다닌 덕에 지금은 하얀 메주꽃처럼 알토란같은 자식들을 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