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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울경 뉴스 디카수필> 김성한, 호박꽃도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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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한 작성일18-08-10 15:27 조회1,9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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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울경뉴스 디카수필>김성한, 호박꽃도 꽃이다

​                   호박꽃도 꽃이다 

 

                                                                                                        김성한             

 

                           

  이렇게 변할 수가!

  달포 전만 해도 붉게 타오르던 넝쿨 장미꽃이 팍삭 늙어버렸습니다.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눈이 시리도록 매혹적인 자태는 다 어디 가버렸는지? 가시만 앙상합니다.

 기찻길 옆 장미꽃, 오가는 이들의 마음을 얼마나 설레게 했던 꽃입니까.

 어디 사람들뿐입니까. 따사로운 봄 햇살도, 지나가는 열차도 그 관능적인 몸매에

얼굴을 붉히곤 했습니다. 벌, 나비는 말할 것도 없고요. 
 

  
 

길 맞은 편 밭둑에는한창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잎이 널따란 호박이  호박꽃 안으로 벌떼들이 잉잉거리며 날아들고 있습니다.

장미 향기 진동하던 때에는 이런 싯누런 호박꽃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벌들입니다.

벌도 세속처럼 염량세태(炎凉世態)를 따르는 것일까요.

호박은 남모르는 수모를 많이 받으며 자랍니다.

자라는 땅부터 홀대를 받습니다.

밭이랑이나 토양이 비옥한 남새밭에는 언감생심 발 들여 놓을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밭둑이나 냇가, 산기슭에다 둥지를 틉니다.

둥그렇게 파놓는 구덩이에 씨를 뿌리고 인분 한 바가지만 넣어주고는 나 몰라라 합니다.

그러나 호박은 다른 작물처럼 주인이 보살펴주지 않아도 잘도 자랍니다.

천덕꾸러기처럼 자라는 호박이지만 버릴 게 별로 없습니다.

애호박은 전을 부치거나 부침을 해서 먹습니다.

동전처럼 동그랗게 생긴 ‘동그랑땡’은 술안주로 제격입니다.

늙은 호박은 호박떡을 해먹고 호박죽도 끓여 먹습니다.

호박죽은 산후 조리에 좋습니다. 요즘 말하는 참살이(Well­being)식품입니다.

씨도 버리지 않습니다.

호박은 이렇게 젊으나 늙으나 다 쓸모가 있습니다.

그 일생이 무척이나 값집니다. ‘둥글둥글 호박 같은 세상’이라는 노랫말도 있지 않습니까.

각박한 세상살이 모나게 살지 말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헐렁한 고무줄 바지를 입은 촌부가 호박 이파리를 따고 있습니다.

그 옛날 보릿고개를 막 넘긴 이맘때쯤이면, 두레상 위에 자주 오르는 것이 호박잎쌈입니다.

모기떼가 앵앵거리는 여름날 저녁,

아버지는 모깃불 피워놓은 마당가 살평상에 앉아 날된장에 보리밥 한 덩어리를

호박잎에 싸서 잡수시곤 했습니다. 매캐한 모깃불 연기가 담벼락을 넘어가는 날 밤이면,

뒷집에 사는 ‘놀부 용식이’가 자주 놀러왔습니다.

용식이는 어린 호박에 고추를 내어 놓고 오줌 누기를 좋아했습니다.

별명이 ‘놀부’이지 하는 짓은 영판 ‘흥부’입니다.

“콧물 찔찔이 용식아, 어디에서 정붙이며 살고 있나?”

 
문득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용식아, 보고자퍼서 죽겠다. ×펄~’

중앙선 열차가 꽥! 소리를 지르며 지나갑니다.

퍼뜩 정신이 듭니다. 아내가 집에 빨리 가자며 팔을 잡아끌더니 한마디 합니다.


“그 까짓 호박꽃도 꽃인가 뭐!”

 
참 속물덩어리인 아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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