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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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상진 작성일19-04-13 14:13 조회3,66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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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연(因緣)
외출(外出)하였다 돌아오면서 우편함(郵便函)을 열었더니 편지가 들어 있어 뜯어보니‘초대합니다,’라는 제목
과 함께
예쁜 신랑 신부의 사진이 첨부된 제주도(濟州道)에서 후배가 보낸 청첩장이었다. ‘지난번 전화했을 때 딸이 결
혼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는데 드디어 날을 잡았구나!’하는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동생! 잘 있었는가?
집안도 다 무고하시고?
방금 자네가 보내준 청첩장을 받았는데 우선 축하드리네!” “형님! 고맙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장이 서울이라
서 오실 수 있겠어요?”
“이 사람아 당연히 가야지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 “그래도 멀리까지 오시라고 하기가 미안해서요.” “그
런 건 괜찮아!
그런데 그날 자네 장인어른께서는 예식장에 오신다고 하던가?” “당연히 오시겠지요.” “그래~에! 그리고 자
네 처형이나 처제 그리고
처남들도 그날은 다 모이겠지?” “물론 다 모이겠지요. 그런데 그건 왜 물으세요?” “다름이 아니고 그날 예
식장에 가려는
첫 번째는 이유는 자네 딸 결혼을 축하하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네 처갓집 식구들을 만나려고 그러는 거야.”
“그럼 몇 년 만에 만나시는 건데요?” “금년이 꼭 40년이 되는 해거든.”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세월 정말
빠르네요.”
“그러게 말일세!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떻게 벌써 오랜 세월이 흘러가 버렸는지.”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어
느새 40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1977년 12월 나는 전남 신안 안좌우체국으로 집배원 발령을 받아 근무하기 시작하였다. 그날 목포 여객선 터미널
에서
안좌로 가는 여객선을 타고 약 2시간이 넘게 항해(?) 한 끝에 안좌면 읍동항에 도착하였는데 배가 선착장에 바로
대지 못하고
조그만 종선(從船)이 마중을 나와 사람을 태우고 물건을 싣는데 내가 보기에 금방이라도 배가 뒤집힐 것 같은데
도 자꾸 물건을 싣고
사람들에게‘빨리 빨리 타라!’고 재촉을 하고 있었다. ‘이러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 근무도 한 번 해 보지 못하
고
바다에 빠져 죽는 건 아닐까?’생각이 드는데 그것은 나의 기우였을 뿐 종선은 뒤집어지지도 않았고 사람 또한 바
다에 빠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가 발령을 받아 갔을 때는 겨울철이어서 강한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편지 배달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제
일 힘든 것은 외로움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가면서 사람들과 차츰 친해지며 어느 정도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었는데 어느 봄 날
팔금도((八禽島)
장촌리의 조그만 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러 갔는데 아주머니 한분께서 “오늘은 못 본 총각이 왔네! 총각은 집이
으디여?”
“저는 보성인데요.” “그래~에! 멀리서도 와갖고 고상해쌓네! 이루와서 쪼깐 쉬였다 가! 어서!”하며 자꾸
마루에 앉기를 권하셔서
잠시 앉았는데 음료수를 한잔 가져다주며 “이것 마셔 봐! 어서~ 총각은 우리 친정 동생하고 똑 같이 생겼단께!
그랑께 인자부터
나한테 누나라고 부르고 배 고프문 밥도 주라해서 묵고 또 심들고 그라문 우리집이서 째깐씩 쉬여가고 그래! 알
았제!”하셔서
그 뒤부터 지나는 길에 들려서 쉬어가기도 하였는데 그 당시 누나의 자녀(子女)들도 내가 가면 가족처럼 반갑게
맞아주었고
나중에 하숙하던 집이 이사를 하면서 자취(自炊)를 하자 김치며 쌀까지 주면서‘무엇이든 필요하면 말하라!’고
하며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고향으로 발령받아 오면서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떠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벌써 4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누나는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그때 그 누나의 가족
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어서 빨리 결혼식 날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진다.
요즘 민들레가 여기저기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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