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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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상진 작성일19-12-14 19:36 조회3,14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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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의 배신
시골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한적한 길가에 하얀, 빨간, 분홍색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바람에 한들거리
며 꼬리가 빨간 고추잠자리
한 마리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시골집 지붕에 보름달 보다 더 큰 커다란 늙은 호박은 지나가는 길손
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나누는데, 가을의 시작됨을 알리는 풀벌레들의“찌~르~르~르!”합창소리는 아직도 쉬지 않고 계
속 들려오고 있었다.
관주산 정상에서 허리 돌리는 기구(器具)를 이용하여 “하나! 둘! 셋! 넷!”운동(運動)을 하고 있는데
“삼촌 일찍 오셨네!”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마을 형수(兄嫂)님 두 분이 올라오고 있었다. “오늘은 조금 늦으셨네
요.” “우리는 일찍 온다고 왔는디
어지께 보다 늦었어?” “그렇게 많이 늦지는 않았지만 조금 있으면 점심때니까 빨리 내려가셔야 될 것
같은데요.”
“그런가? 그라고 본께 시간도 징허게 빠르네! 아침 밥 묵고 멋 잔 하다보문 금방 점심때 되야 불고 그
랑께 하레가
우추고 간지도 모르고 가 불드랑께!” “그러니까요. 더군다나 요즘은 낮의 길이가 한 여름보다도 짧으
니 하루가 더 빨리 가는 같아요.”하는
순간‘띠~리~리~리!’휴대폰 벨이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형수님이 한 분이 재빨리 전화를 받더니 “우
메! 우리 비타민(Vitamins)이
영상통화(影像通話)를 했네!”하며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며“잘 있었냐? 경원이는 멋허냐? 얼렁 잔 바
까 줘봐라!
보고 싶어 죽것다!”하더니 “지금 멋하고 있어? 아이고~ 우리 이삔 강아지! 멋이라고? 강아지가 아니라
고? 그라문 멋인디?
경원이 오빠라고? 오빠란 말은 으서 또 배왔다냐?”하며‘킥! 킥! 킥!’웃더니 마치 이 세상에 손자는
자신 밖에 없는 것처럼
무척 행복한 표정이다. “머시라고? 감자 박수를 쳐본다고? 으디 한 번 쳐봐라! 그라고 또 고구마 박수
가 있어? 그것은 우추고 한다냐?
그라고 또 오이박수도 있고? 어디 한 번 쳐봐라! 오! 그래! 할머니한테 빠이빠이하고 사랑해! 잉? ‘사
랑해!’는 그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라문 우추고 한다냐? 이라고 두 손을 높이 올리고 구부리라고? 잉! 알았다! 그래 어서 들어
가그라! 전화해줘서 고맙다.
경원아! 할머니도 너를 마니 사랑해!”하고 전화를 끊었다. “형수님! 손자가 그렇게 예쁘세요?” “그
라문 이쁘제 안 이뻐? 하는
짓거리마다 다 이쁘제 안 그란가?”하고 옆에 있는 형수께 묻자 “그라제! 이 세상에서 손지 같이 이삔
사람이 으디가 있간디!
참말로 눈에 너도 안 아프꺼이시!”하더니 “그란디 엊그저께 우리 옆집 노인들은 서울 아들네 갔다 울
고 왔다 그러데!”
“왜 울고 왔는디?” “손지들이 써운하게 해서 그랬다든가 으쨌다든가?”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아니
이제 서너 살 많아야
대여섯 살 먹은 손자가 무엇을 그렇게 서운하게 해서 울고 왔다던가요?” “즈그 어메가 두 달 동안 병
원(病院)에 입원했는데
그동안 애기를 집에서 데꼬 있었든 모양이데! 그란디 즈그 엄마가 퇴원해 갖고 데꼬 가 부렇어! 그란디
보낼 때도
눈물 바람을 해 쌓드만 엊그저께는 애기들 보고 싶다고 서울잔 갔다 올란다고 가드만!”“그런데요.”
“근디 애기들이 할머니,
할아부지를 보문 얼렁 달려와서 품이 안겨야 쓰꺼인디 ‘할아버지 미워! 할머니 미워!’하고 도망을 가
서 오도가도 안했든 모양이데!
그랑께는 그거이 써운해갖고 내려옴시로 집에 올때까지 울었다든가 눈물 바람을 했다든가 하여튼 마니
써운했든 갑서!”
“혹시 손자 손녀가 다시 데리러 온 줄 알고 피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지금은 그래도 조금 있으면
다시 할아버지 할머니를 잘 따르겠지요.”
전남 보성읍 관주산 단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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