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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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상진 작성일20-10-31 15:26 조회3,28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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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과의 전쟁
길을 가다 우연히 누구네 집 울타리 가에 활짝 핀 봉선화 꽃을 보았는데 그 순간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어렵고 힘들게 살았던 1960년대 이맘때쯤 봉선화 꽃이 피면 동네의 누나들은 꽃잎을 따서 돌 위
에 놓고‘콩! 콩!’찧은 다음
꽃잎을 콩알만큼 떼어 손톱위에 놓고 비닐로 둘둘 감아 묶어놓으면 다음날 예쁜 꽃물이 들었는데 요즘에
도 그렇게
봉선화물을 들이는 사람이 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데 “어이! 동생!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에 그렇게
불러도 모르고 있는가?”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잘 아는 선배께서 활짝 웃고 있었다. “형님 오셨어요? 그런데 어디 가는
길이세요?”
“그냥 집에 있기 심심해서 나와 봤네!” “그럼 요즘에는 할 일이 없으신가요?”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사람이 왜 할 일이 없겠는가?
일을 하려고 들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시골일인데 그런다고 날마다 일에만 빠져 살면 되겠는가? 가끔은
쉬는 날도 있어야지 안 그런가?”
“그건 형님 말씀이 맞네요. 아무리 바빠도 쉴 때는 쉬어야 능률도 오르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형님 집
에 사과나무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모기장 같은 걸 씌워놓으셨던데 그건 왜 그렇게 해 놓으셨어요?” 묻자 갑자기 “허! 허!
허!”웃더니
“우리 집 사과는 추석(秋夕) 안에 따먹을 수 있는 조생종(早生種)이거든 그래서 맛이 일찍 드는데 아직
나도 한 개 먹어보지도 못했는데
까치 열댓 마리가 날아와 마치 자기 것처럼 파먹고 있더라고, 그걸 보니 얼마나 미운지 이것들을 몽땅
잡아 혼을 내주고 싶지만
어디 그게 맘대로 할 수가 있는가? 그래서 새들이 공격을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 없을까? 연구하다 마치
집에 옛날에 쓰던 모기장이 생각나서
그걸 씌워놨더니 그 다음날 까치가 수대로 날아오더니 한참을 사과나무 주위에서‘깍! 깍!’거리고 야단
이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어떻게 하기는 뭘 어떻게 하겠는가? ‘여기서 시끄럽게 하지 말고 다른
데로 가라!’쫓아버렸더니
그 다음부터 안 오더라고.” “까치들이 정말 영리하네요.” “그런데 요즘은 농산물도 그야말로 새들과
전쟁(戰爭)을 치러서
승리해야만 수확을 할 수 있어.” “새들과 전쟁을 치르다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며칠 전 자
네 형수가 참깨를 베어다
담벼락에 길게 세워 놓았거든.” “그건 저도 보았는데 깨는 얼마나 나오던가요?” “그런데 참깨 대가
마르면서
알이 하나둘 밑으로 쏟아질게 아닌가?” “그렇지요.” “그런데 그걸 비둘기가 왔다 갔다 하면서 모조
리 주워 먹고 있어!”
“정말요? 아니 그게 참깨인줄 비둘기는 어떻게 알았을까요?” “글쎄 나는 가르친 적이 없으니 본능적
으로 알고 있거나
또는 부모에게서 배웠던지 했겠지! 그런데 대가 마르면 알이 쏟아지는 줄 어떻게 아는지 기가 막힐 노릇
일세!
그리고 요즘 비둘기들은 사람을 봐도 별로 겁도 안내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쫓으면 조금 날아가는 척 하
다 다시 와서 먹어치우더라고.”
“비둘기가 간이 부었을까요?” “글쎄 간이 부었는지 어쨌는지 내가 안 봐서 모르겠지만 엊그제는 고구
마 밭에 가 봤거든.”
“그러면 작황은 어떻던가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누가 고구마를 파먹은 흔적이 있어!” “정말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그런데 밭 한쪽에서 꿩이‘푸드득!’하고 날아가더라고.” “꿩이 고구마 밭에는 뭣 하러 왔을까요?”
“그래서 날아간 곳으로 가 보았더니
꿩이 발로 긁어 고구마를 쪼아 먹었더라고.” “정말 화가 나셨겠네요.” “그래도 어떻게 할 것인가?
새들도 농사지은 것이 없어 그러는 것이니 서로 나눠먹고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억새의 머리 끝에 매달린 10월이 스르르 손을 놓고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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